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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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 기고] 발달장애인 참정권 알아보기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6-28 조회수 :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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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참정권 알아보기


김수원 활동가(한국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인 피플퍼스트는 전 세계 43개국에서 활동하는 단체다. 197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자기옹호 워크숍에 참여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 즉, ‘나는 우선 사람으로서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 피플퍼스트 운동으로 확산했다. 한국피플퍼스트는 2013년부터 일본 피플퍼스트대회에 참여하며 발달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6년 한국피플퍼스트가 공식 출범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을 촉구했다.


참정권은 국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서 18세 이상의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선거는 국민 스스로 의견을 대변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참정권이라는 권리는 있지만 이를 제대로 실현할 방법이 없다. 타 장애유형의 경우 공직선거법에서 정치 참여에서 필요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A는 한글을 잘 알지 못하고 손떨림이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선거철이 되어 집으로 선거공보물이 날아왔다. 공보물을 살펴보니 사진도 많고 글도 많은데 한글을 잘 몰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활동지원사에게 알려달라고 했지만, 너무 어려운 단어들 때문에 공보물 보기를 포기했다. 선거일이 되어 투표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평소에 다니지 않는 곳이라 찾아가기 어렵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투표소에 갔다. 투표하려고 줄을 서는데 투표 사무원에게 투표보조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활동지원사 동행은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혼자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기표대에 가서 내가 찍고 싶은 후보의 이름을 찾았지만, 한글을 잘 모르니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민하다 도장을 찍으려는데 칸이 너무 작고 손이 떨려서 잘못 찍을까 봐 두려웠다. 결국 내가 찍고 싶은 후보자의 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도장을 아무 곳에나 찍었다. 투표용지를 들고나오니 접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투표 사무원이 지적했다. 투표용지를 접어야 한다고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투표 사무원의 도움으로 투표용지를 접어서 투표함에 넣으려는데 손이 떨려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왔지만 내가 찍으려는 후보를 제대로 찍었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찝찝했고, 지적을 받은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상의 A 사례)


▶ 지난 5월 27일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가오나시 분장을 한 채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가오나시 분장은 발달장애인이 선거에서 유령 취급 받아왔음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다. [사진 이슬하, 출처 비마이너]


한국피플퍼스트에서 발달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참정의 권리로 요구하는 것은 네 가지다. 첫 번째,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제작해 제공하라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집에 오는 후보자 공보물은 한자어나 영어,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 전문어 등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 쉬운 언어와 명확한 문장으로 구성하고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영국은 이미 2010년부터 학습 및 발달장애가 있는 유권자를 위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easy read manifestos)’을 일반 공약집과 구분해 발간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노인이나 청소년 등 다양한 유권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선거자료가 꼭 필요하다.


두 번째, 그림투표용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투표용지는 한글, 숫자, 이름 등 최소한의 정보만 담고 있다. 각 후보자의 사진과 정당의 로고, 색깔 등이 들어간 투표용지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는다면 한글이나 숫자를 모르는 사람도 본인이 찍으려고 하는 후보자와 정당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이미 대만, 홍콩, 아르헨티나, 스코틀랜드, 이집트, 영국 등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투표용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현재 온라인 투표나 영상, 사진 등을 활용한 기술이 발전해있으므로 시대에 맞게 투표용지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세 번째, 투표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적 투표보조를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본인이 뽑을 후보자를 마음속에 선택하고 선거에 참여하지만, 투표소를 찾아가는 것부터 투표 진행 방법, 그리고 한글을 모르거나 투표용지의 칸이 작아 찍기 어려운 상황 등에 마주한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의사소통 조력을 통해 스스로 투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앙선관위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자기결정을 할 수 없어 대리 투표의 위험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각장애인이나 신체장애인들은 그런 위험에도 투표보조를 받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인지적 어려움을 투표할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당사자 스스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보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자기결정에 대한 편의가 지원되지 않는다면 권리가 있어도 이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제대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보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에 타인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한 비밀투표를 할 수 있도록 가족이나 시설 직원들이 아니라 객관성을 담보하는 선관위 직원이 투표보조를 지원해야 한다. 


네 번째 선거에 대한 지역별 설명회와 모의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현재 중앙선관위에서 선거 절차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자료들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단지 배포만 하고 있다. 이 자료로 지역별 설명회를 열어 모의투표를 진행함으로써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진행 과정과 방법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익힐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의 한표 한표가 이 나라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권력을 위임받게 하는 것이다. 각 선거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주권과 정치 참여에 대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참정권 실현은 발달장애인도 이 나라의 주권을 가진 존재로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우뚝 서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국가와 중앙선관위 등은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 그림투표용지, 공적 투표보조, 지역별 설명회와 모의투표 등을 하루빨리 시행하길 촉구한다.


 !!!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에 대하여 더 알아보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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