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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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편집인의 글] 발달장애인의 존재함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7-15 조회수 : 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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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존재함

김종환(성북아리 편집위원장)


‘어머니, 우리를 죽이지 마세요’


장애가 있는 두 살배기 자식을 살해하고 구속된 어머니를 감형해달라고 시민단체가 요구하자 푸른잔디회(青い芝の会)가 외친 말이다. 푸른잔디회는 1960년대 후반부터 ‘비장애인의 문명을 부정한다’는 행동강령을 세우고 버스, 목욕탕, 도로 등을 점거하는 등 급진 장애인운동을 펼친 단체이다. 당시 ‘우리를 죽이지 말라’는 외침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 3/2 발달장애 딸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한 50대 구속영장(경기 시흥)

- 3/2 8세 발달장애 아들 입학식 날 어머니가 살해(경기 수원)

- 5/17 조카에게 폭행당한 지적장애인 사망(전남 여수)

- 5/23 40대 어머니 6세 발달장애 아들과 투신(서울 성동구)

- 5/23 뇌병변·발달장애 딸 살해, 자살을 시도한 60대 체포(인천 연수구)

- 6/3 발달장애 형제 홀로 돌보던 아버지 자살(경기 안산)


지난 넉 달여 동안 우리 사회에서 죽거나 죽임을 당한 사건들이다.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가족에게 떠넘겨 발생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대통령 집무실 근처 삼각지역사엔 7월 12일까지 49일 동안 분향소가 차려졌다. 국회 다수 의석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행보를 내세우며 조문하고 부모 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국회의원 176명은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 과정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여 년간 주류 진보 장애인운동은 주로 지체장애인(뇌병변장애인 포함)이 이끌어왔다. 그리고 발달·지적 장애인 부문은 당사자보다 부모들이 20여 년 동안 눈물겹게 투쟁해왔다. 한편 약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도 피플퍼스트 운동이 시작되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인 피플퍼스트는 197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자기옹호워크숍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대해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 즉, “나는 먼저 사람으로서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발달장애인은 불과 얼마 전까지 진보 장애인운동계에서조차 ‘없는 존재’였다. 2000년대 이전 중증장애인 대다수가 유령처럼 시설이나 집구석에서만 존재했듯이.... 또한 돌봄이 힘들다고 죽임을 당하고 그를 죽인 가족에게 사회가 책임을 묻거나 동정할 때 역시 그들은 늘 객체였다. 20여 년 동안 투쟁해온 장애인부모운동에서조차 그들은 돌봄의 대상으로 묻혔다. 



지난 6월 30일 용산역에서 열린 T4 장례식에서 이삼헌 님이 추모춤을 추는 모습.


지난 6월 30일 용산역에서 최근 잇따른 죽음을 추모하는 T4 장례식이 열렸다. 이 장례식 후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7월 5일 ‘정부는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라’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우리 당사자들 모두 비통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발달장애인과 부모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덜 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슬펐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슬퍼했지만, 우리 당사자의 삶과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발달장애인이라서 죽거나 죽임을 당했다고 더 이상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발달장애인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꾸어야 발달장애인도 그 부모도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단순히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로 더 이상 우리의 존재가 이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면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더 이상 죽음으로 몰리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라고 마무리했다. 


피플서울센터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번 성명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함을 드러냈다. 마치 1960년대 푸른잔디회 뇌병변장애인들이 ‘우리를 죽이지 말라’며 일본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듯이. 진보 장애인운동의 주체 세력은 1990년대 경증 소아마비 장애인에서 2000년대 중증 지체 · 뇌병변 장애인으로 바뀌어왔다. 그리고 이제 발달장애인이 운동의 전면에 나서려 하고 있다. 지금도 2만 명이 넘는 발달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서 자유 의지 없이 ‘유령’처럼 살고 있다. 경쟁과 효율의 자본주의는 장애인의 몸뚱어리를 거부한다. 더 천천히, 더 쉬운 이야기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가는 장애해방운동, 그 길에 발달장애인도 주체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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