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7호 - 현장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촉구 삭발결의식 100일차를 맞이하며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9-23 조회수 : 773
파일첨부 :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촉구 삭발결의식 100일차를 맞이하며

김필순(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안녕하세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김필순 기획실장입니다.

이 글을 읽는 성북센터 회원님께 지하철 이용에 불편하게 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전장연은 작년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와 ‘지하철 선전전’을 시작했고, 올해 3월부터 매일 삭발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10개월째 이어지는 긴 투쟁에 지치기도 하지만 현장 소식을 전해달라는 곳도 있고, 많은 곳에서 강연과 후원도 이어지면서 힘을 내고 있습니다.


▶김필순 기획실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필자)
 

‘장애인 이동권은 알겠는데 장애인 권리예산은 뭐지?’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를 기점으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가열찬 투쟁이 시작되어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되었습니다. 2006년 한강대교 위를 중증장애인이 온몸으로 기어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이끌어 냈고,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삭발을 통해 ‘장애인특수교육법’을 제정했으며, 마로니에공원 천막농성을 통해 탈시설-자립생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같이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예산을 장애인권리예산이라고 부릅니다. 


일부 시민과 정치인들은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만 외치지 왜 장애인 권리 전체를 요구하는지 묻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인 장애인 이동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단지 이동권만 개선된다고 해서 장애인의 삶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당당한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입니다. 


그 투쟁의 공간이 지하철이라 시민들이 불편하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장연은 지하철에서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국회에서 장애 관련 법을 만들고, 토론회도 하고, 정부 부처와 면담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장애인예산은 OECD 평균 1/3 수준입니다. 이제는 끝장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탑니다. 장애인만의 투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적어도 OECD 평균의 장애인예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작년 12월부터 지하철에서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사이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여러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하던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외침은 대통령 인수위원회를 거쳐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있습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효자동에 있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삭발식을 시작했고 9월 30일이면 120일차가 됩니다.



▶ 09월 20일 아침 8시 삼각지역에서 진행된 110차 삭발결의식 현장에서 이상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하고 있다(출처 비마이너, 사진 하민지). 


현재는 매일 아침 8시 삼각지역에서 삭발결의식을 하고, 4호선 삼각지역에서 혜화역까지 지하철 선전전을 합니다. 지하철 선전전은 지하철을 연착시키는 투쟁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이동 동선이 특이합니다. 삼각지역에서 출발해 혜화역에 바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정거장 지난 한성대입구역까지 갔다가 다시 혜화역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시지요? 선전전을 마무리하는 혜화역 동대문 방향 5-3 승강장은 삼각지역에서 오면 반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대문 방향 5-3 승강장에 가기 위해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합실로 올라가 다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비장애인이라면 1분도 걸리지 않을 이동시간이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5분 이상 걸리기에 ‘중앙 환승통로’가 있는 한성대입구역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많이 나왔지만,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통약자는 보행하는 비장애인보다 4~5배의 이동시간이 걸립니다. 비장애인에게 5분이면 되는 거리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20~30분이 걸리는 셈입니다. 저상버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서울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50%가 넘지만, 여전히 저상버스가 다니지 않는 노선이 있고, 마을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100일 차를 넘긴 삭발투쟁에 150여 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삭발했습니다. 성북센터 홍성훈 활동가님 또한 삭발식 73일차 결의자입니다. 지방에서 오시는 삭발 결의자 중에는 첫 차를 타도 삭발식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전날 서울에 도착하여 농성장에서 쪽잠을 청하고 삼각지역에 오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삭발 결의자뿐 아니라 삭발하는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인천에서 동트기 전에 출발해 2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온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생각보다 서울지역 활동가들의 참여가 적어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삭발투쟁을 통해 전국의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 무엇보다 큰 이 투쟁의 성과입니다.


​▶2022년 3월 30일부터 진행된 삭발결의식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모습을 담은 현수막(사진제공 : 필자)


매일 아침 투쟁을 준비하는 전장연 활동가들도 사실 많이 지칩니다. 어떤 활동가의 표현대로 침대에서 자기 몸을 끌어당겨 겨우 눈곱만 떼고 현장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온 아침, 활동가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삭발을 결의하면서 한줄 한줄 적은 결의문을 듣고 나면 그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150여 명의 삭발 결의자와 그 아침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지금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삼각지역에 붙인 권리보장 스티커를 열심히 제거하는 분들이 있는데 어느 날 그 뜯겨나간 스티커 자국에서 손 메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세요. 이동권은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압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연대하는 마음, 모두가 교통약자라는 마음으로 지지합니다.”(2022.8.2. 삼각지역 1-1 승강장)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며칠 전, 혜화역 승강장에 붙인 현수막이 네 번째 뜯겨나갔습니다. 전장연 투쟁방식에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는 점도 압니다. 그렇다고 이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3만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고, 어렵게 자립했지만 부족한 활동 지원 시간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고, 돌봄에 지친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투쟁을 멈출 수 있을까요. 욕을 하면 욕을 듣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시민분처럼 ‘(정치권에서) 아직도 안 들어주고 뭐하나’고 염려해주시고, 함께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그렇게 우리 사회가 한 발 더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2022년 08월 02일 삼각지역 1-1 승강장역의 장애인 권리보장 스티커가 뜯겨져 나간 자리에서 발견된 손 메모(사진제공 : 필자)

  "긴 시간 고생 많으세요. 이동권은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압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대하는 마음, 모두가 교통약자라는 마음으로 지지합니다."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이전글 [7호 - 성북센터소식] 기획사업팀 _ 마음으로 쓰는 글씨
다음글 [6호 - 서로인터뷰] 어떤 활동이든 재미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