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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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 연재] 알기 쉬운 장애학(1) 장애학, 사회적 관점에서 장애를 다루는 학문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9-30 조회수 :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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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장애학(1)]

 장애학, 사회적 관점에서 장애를 다루는 학문 


김도현|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 편집자 주 : 이번 《성북아리》7호부터 시작하는 연재는 '알기 쉬운 장애학'입니다. 지난 호까지 연재를 이어온 김도현 연구활동가가 새로운 주제로 총 5회에 걸쳐 글을 기고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장애학이라는 학문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일상생활과 운동 현장에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다소 낯선 학문이지만, 여성학(women’s studies)과 비슷한 성격 및 맥락을 지닌 연구 분야라 생각해도 될듯합니다. 즉 장애학은 인류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떤 차별의 역사를 겪어 왔는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어떤 사회 구조와 문화 속에서 발생하고 존속되는지, 그리고 그 같은 차별을 없애려면 어떤 실천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연구합니다.

장애학의 영어 표기는 ‘disability studies’입니다. 조금 더 직역하면 ‘장애연구’로도 옮길 수 있겠지요. ‘cultural studies’가 ‘문화연구’로, ‘gender studies’가 흔히 ‘젠더연구’로 옮겨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장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은 장애학 말고도 이미 많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재활학,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등을 들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학문들과 장애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살펴보면 장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도 대략 파악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9년에 출간된 『장애학 함께 읽기』에서 저는 장애를 다루어 왔던 기존의 학문들과 비교하여 장애학이 지닌 변별점을 ① 사회문제로서의 장애에 대한 연구 ② 학제적 연구 ③ 차별 철폐와 권리 확보를 향한 실천지향성 ④ 해방적 연구 접근법의 4가지로 정리해 제시한 바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이 어떤 정답은 아니고 추가적으로 다른 중요한 특징과 차이점도 존재하겠지요. 그렇지만 장애학이 어떤 학문인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사회적’(social), ‘학제적’(interdisciplinary), ‘실천지향적’(praxis-oriented), ‘해방적’(emancipatory)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나름의 유용성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연재의 첫 번째에서는 우선 장애학이 지닌 사회적 성격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장애학 서적이 조금씩 번역되어 출간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외국에서 장애학을 공부하고 돌아오신 분들이 생겨나면서 관련 논문들이 학술지에 실리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한글로 접할 수 있는 장애학 관련 텍스트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저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나마 외국의 장애학 저널이나 단행본을 뒤적이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어로 쓰인 장애학 문헌들을 보다 보면 참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social’입니다.

장애학 관련 텍스트에서 이처럼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기존의 장애 관련 연구들이 장애를 이와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다루어 왔음을 함의합니다. ‘사회적’의 반대말이 뭐지요? ‘개별적’(individual) 혹은 ‘개인적’(personal)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즉 의학, 재활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등의 학문이 장애를 연구해 왔지만, 적어도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보기에 그러한 학문들은 장애를 개별적·개인적인 문제로서 다루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학이 성립하던 시기 장애학의 개척자들은 기존의 장애 관련 연구들이 ‘개별적 장애 모델’(individual model of disability)에 입각해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적 장애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을 주창하게 됩니다.

장애학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사회적 장애 모델을 정립한 영국의 장애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장애인을 표기할 때 ‘disabled people(혹은 the disabled)’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영어권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공식 용어가 ‘disabled people’입니다. 그렇지만 이후에는 장애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피플 퍼스트’(people first)의 지향에 입각해 사람을 앞쪽에 내세운 ‘people with disabilities’가 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와 뉘앙스를 지닌 ‘disabled/disability’라는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physically[mentally] challenged people’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최근에는 ‘differently abled people’과 같은 완곡어법도 종종 사용되고 있지요. 전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도전을 겪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이고, 후자는 ‘다른 능력을 가진(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 개인이 적응해야 하는가,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가?(그림 출처 : 필자)

   그림 설명 : 양편에 장애인을 나타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픽토그램이 두 개 배치되어 있다. 왼쪽에 위치한 장애인 픽토그램 위에는 영어로 Individual, 아래에는 You Adapt가 쓰여 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주변에 장애인을 향하여 화살표 6개가 배치되어 있다. 두 번째 픽토그램 위에는 영어로 Society, 아래에는 Social Barriers가 쓰여 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외부를 향해 화살표 6개가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disabled people’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은 이 용어가 무언가를 드러내 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게 된’(disabled)이라는 수동태의 표현은 이미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작용을 가한 무언가를 상정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장애인들은 그들 자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고, 이처럼 그들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회’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disabled people’을 완전히 풀어서 표기하면 ‘people disabled by society’가 됩니다.1)  

 이처럼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disabled people’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것은 ‘disabling society’를 염두에 둔 것이고, 장애학에서 연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이처럼 장애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장애인의 몸(손상)이 아닌 사회에 있다고 보니까요.

영국의 오픈 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에서 1975년에 최초로 개설되었던 장애학 과정은 1994년 폐지되기 전까지 두 번에 걸쳐 프로그램이 갱신되는데요, ‘disabling society’는 바로 그 최종 프로그램의 타이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장애학이 오로지 사회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도 다룹니다. 그렇지만 이때의 장애인은 개별화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 속에서 파악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입니다. 결국 장애학은 장애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를 다루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을 다룹니다. 그러니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장애학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연재 2편에서 계속됩니다 


​1) 이와 관련해서는 Lisa Egan, xoJane, “I’m Not A “Person With a Disability”: I’m a Disabled Person”, Nov. 9, 2012(http://www.xojane.com/issues/i-am-not-a-person-with-a-disability-i-am-a-disabled-person)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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