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7호 - 탈자 날자] 혼자만의 자유가 있어서 행복해요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9-30 조회수 :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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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자유가 있어서 행복해요


김민정


ㆍ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나이는 서른 셋이고, 자립생활을 한 지 3년 됐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살았어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장애인 시설은 아니었고, 한두 살부터 보육원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고아가 아니었어요. 고모가 있었고, 친오빠도 있었어요. 보육원에는 저의 친오빠와 지냈는데요. 보육원에서 산 지 두세 달 만에 저만 원주에 있는 ‘천사의 집’으로 옮겼어요. 그때 간 천사의 집은 장애인 시설이었어요. 원래 오빠도 저와 같이 가려고 했어요. 오빠도 장애인이거든요. 그런데 천사의 집은 여자, 남자 따로 생활관이 있었고, ‘중증 장애인’만 갈 수 있어서 오빠는 입소를 못했어요. 저만 천사의 집으로 갔어요. 천사의 집으로 갈 때도 너무 어려서 오빠와 헤어진 기억도 잘 나진 않아요. 어린 시절 오빠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었어요.



▶민정님이 옷가게 거울 앞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다.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천사의 집에서 살았었어요. 천사의 집에서는 수녀님이 돌봐주셨어요. 저는 수녀님을 도와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고, 중학교에도 다녔었어요.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에버랜드에 놀러 간 기억이에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천사의 집에서 ‘다비타의 집’으로 또 옮겼어요. 옮기게 된 건 어떤 언니 때문이었어요. 그 언니랑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 의견이 잘 맞지 않았고, 종종 다툼으로 이어졌었는데, 좀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수녀님이 다비타의 집으로 가시게 되었고 저도 함께 가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수녀님을 따라 다비타의 집으로 갔어요.



▶민정님이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임대주택 상담을 받고 있다.


   다비타의 집은 아파트 같은 숙소였어요. 남자랑 여자랑 같이 살았었는데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다비타의 집에 있을 때는 보통 빨래를 밖에다가 널고 산책도 하고 마트 가서 장보고 돌아오곤 했어요.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고모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제가 보육원에서 생활하기는 했지만 사실 고모랑 완전히 헤어진 건 아니었어요. 고모는 저를 보러 보육원과 천사의 집에 찾아오셨거든요. 그런데 다비타의 집으로 옮겼을 때 고모와 연락이 끊어져서 한동안 보지 못했어요. 

   나중에 고모에게 이야기 들은 거지만 어느 날 고모가 저와 같이 살려고 천사의 집으로 갔는데 제가 없으니까 난리가 난 거예요. 천사의 집에서는 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함부로 제가 어디로 옮겼는지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대요. 고모는 포기하지 않고 원주 경찰서로 가서 저를 찾아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경찰서에도 잘 안 찾아주려고 하다가 고모가 세 시간 동안 계속 요구한 끝에 제가 다비타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다행히 어렸을 때 지문등록을 한 적이 있어서 찾을 수 있었어요. 다비타의 집은 안산에 있었는데 고모가 거기까지 찾아온 거죠. 고모한테 정말 감사해요. 당시에 고모는 저뿐 아니라 오빠도 찾았는데요. 고모가 오빠를 찾은 뒤로 오빠도 탈시설을 했어요. 오빠도 지금 자립생활 중이에요.

   고모가 여기 나가서 나랑 같이 살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다비타의 집 생활도 좋았는데 고모랑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고모와 같이 살겠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고모는 제가 시설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러던 중 어느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성북센터에 체험홈이 있으니 연락을 해 봐라.” 하고 소개해주었고 그래서 전임 담당자였던 이윤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체험홈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ㆍ시설이 아닌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

   시설에서는 식사, 빨래, 청소 등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줬어요. 하지만 체험홈에서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설에 있을 때와 체험홈에 있을 때를 비교하면 체험홈이 훨씬 즐겁고 행복했어요. 아마도 혼자만의 자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설에서는 그런 자유가 없으니까요. 수면시간, 기상 시간 등등을 스스로 정하고 실행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민정님이 만든 요리를 들고 웃고 있다.


   한편으로는 혼자서 생활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어요. 작년부터는 체험홈에서 나와 성북센터와 가까운 원룸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돈을 벌기 위해 극단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영화협회와 뮤지컬협회에서 지원해줘서 생긴 일자리라고 하더라고요. 극단에서 6개월간 일을 했었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청소도 하고 공연장 정리도 했었어요. 일을 더 하고 싶었지만 연속적으로는 할 수 없었어요. 다음 해에는 전년도에 선정이 안 된 분들을 위주로 뽑아서 6개월간만 근무했었어요.

   곧 새로운 일자리 면접을 보게 돼요. 버스를 소독하는 일자리인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볼 거예요.


▶민정님이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고 있다.


   일하는 것 외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영어도 재미있구요. 영어를 공부해서 외국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요. 또 열심히 배웠던 십자수도 계속 더 하고 싶어요. 잘 만들어서 판매도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청약통장도 만들어서 집도 가지고 싶어요.




 

▶민정님이 학습지 교사와 함께 공부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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