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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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 편집인의 글] 불행이 아닌 불평등이다.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9-30 조회수 :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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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아닌 불평등이다 

​홍성훈(성북아리 편집위원장) 


   지난 9월 25일. 시청 인근에서 3만 5천여 명의 사람들이 드러누웠다. 아직 여름 햇볕이 가시지 않은 날의 도로 한복판에서였다. 행진 중 긴 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도로에 눕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른바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다. 3만 5천여 개의 땅과 하늘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발이 아닌 등으로 지구를 감각했다. 이 감각의 전이는 한낱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었고, 추상적인 문제를 실존의 질문으로 변화시킨 순간이었다.

   이날로부터 한 달 여 전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했다. 비는 공평하게 내리지 않았다.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비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많이 스며들었다. 차오르던 빗물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목숨을 잃었고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노점상들은 생계수단을 잃어버렸다. 당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빗물은 순식간에 세 모녀의 거주 공간으로 들어찼고 이미 수백 건의 119 신고가 접수된 탓에 구조는 요원했다.

   ‘반지하 참사’로 대표되는 장애인들의 죽음과 노점들이 와해된 현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장애인 운동 활동가들과 반빈곤 활동가들은 이 비극이 일상 곳곳에 스며든 자본의 논리가 축적된 결과라고 말한다. 이윤 착취를 최대의 지상과제로 삼는 자본은 스스로 이윤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들을 사회 바깥으로 내몬다. 또한 장애인들은 시설로, 노점상들은 도시 외곽으로 수용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들의 생존 문제는 너무도 쉽게 무시된다. 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조명받을 때는 죽음 이후다. 그마저도 소수의 언론에서는 사회 구조를 함께 조망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지만 대다수 언론과 정부는 한낱 ‘개인의 불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9.25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기후위기의 문제가 우리 공통의 의제임을 명확히 했다. 홈리스, 장애인, 쪽방촌 주민들은 행진에 나와 저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말했다. 바로 기후위기는 생존 문제이며 배제와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구조를 변혁하지 않는 이상 대안은 없다고 말이다. 앞으로도 기후위기의 문제는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표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 모색에 여태까지 인간 중심 사고에서 배제되었던 지구 구성원(동물, 식물 등등)의 입장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언젠가는 ‘다이-인’ 퍼포먼스가 아니라 ‘리브-인(live-in)’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건 우리의 몫에 달려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불평등이 재난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하늘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강혜민 출처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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