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1호 - 탈자, 날자] 직접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3-24 조회수 :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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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

김해구 

   

     

                                              ▶성북센터 자조모임에서 한강공원 나들이 중인 해구님.                                                              


나는 35년간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지 못했다. 막내인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뇌병변장애가 있었고 부모님이 바쁘셔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형과 누나가 학교 가면 집에 혼자 남은 나를 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셨다. 재활치료도 받았지만, 집의 사정상 오래 받지는 못했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고 한글은 형제들과 조카가 가르쳐 주거나 학습지로 공부했다. 


공부 말고는 주로 텔레비전을 봤다. 만화영화를 주로 봤는데 축구왕 슛돌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는 집 밖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놀기도 했는데 점점 커가면서 세발자전거를 타는 게 힘들어졌다. 그냥 집 앞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들어오곤 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 등에 업혀서 다니곤 했는데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지면서 업혀서 다니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사 가게 되었다. 이사한 집은 5층짜리 빌라였는데 우리 집은 3층이고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한 번씩 외출하려면 누군가에게 업혀서 나가야 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기가 힘들어졌다. 점점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면서 집에서 유일한 친구가 컴퓨터였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니면 컴퓨터 게임을 하게 되었고, 게임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온라인에서 친구가 전동휠체어에 관한 정보를 주었다. 아버지와 상의해서 전동휠체어를 샀다. 그렇게 바깥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동휠체어는 3층까지 가져올 수가 없으니 1층에 세워놨다. 처음에는 3층에서 업혀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외출했는데 몇 개월 후 부모님이 나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가 보니 가능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것도 많이 봤다. 집 근처에 어린이대공원이 있었는데 거기도 많이 갔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엄마랑 같이 다녔는데 차츰 나 혼자 다니게 되었다. 전동휠체어를 처음 탔을 때는 사고도 많이 났다. 아차산자락 내리막길에서 무엇엔가 걸려 몸이 나뒹굴기도 했고, 건널목에서 신호를 위반한 택시와 부딪히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나고 뿌듯했다. 



                                                
                                                자립 후 마트에서 직접 식자재를 사는 모습.                                ▶해구님은 독립 뒤 장애인인식개선교육강사 자격과정도 수료했다.

 

돌아다니면서 정립회관을 알게 되었다. 정립회관에서 헬스 운동을 시작했고, 몇 개월 뒤에는 웹 마스터라는 컴퓨터 면접도 보게 되었다.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다시 오라고 해서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다. 2년을 배우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한글과 포토샵 자격증도 땄다. 지인을 통해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공부도 시작했다. 2년 동안 검정고시 초, 중, 고등 과정을 모두 합격했다. 지금은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교육학을 배운 뒤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할 예정이다.


너른마당에 같이 다니던 지인이 집에만 있지 말고 독립해서 자립생활이란 걸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체험홈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는 것도 없고 혼자 지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못 한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활동지원서비스도 받게 되었다. 


2020년 7월 체험홈에 들어가 처음으로 가족 없는 곳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과는 다른 구조와 다른 물건들이 조금 불편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좋은 것도 있었다. 혼자서 나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나가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는 것이다. 서울형공공일자리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월급 80만 원을 받아서 절반을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좋아하셨다. 체험홈에 2개월 동안 지내면서 혼자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해 살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되었다. 지금은 구청에서 하는 장애인복지 일자리 일을 1주일에 3일 하루 4시간 일을 하면서 4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해구님이 현재 사는 집.        

 


최근엔 체험홈 담당 선생님 도움으로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집을 알아보고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되었다. 38년간 집에서 생활하다가 혼자 생활해보니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불편한 것은 외롭고, 혼자서는 먹을 수 없고, 누구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점은 나에게 선택권 많아졌다는 것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친구들도 집으로 초대를 할 수 있다. 조금은 밤늦게 들어가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나에게 맞는 생활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


혼자서 자립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주위에 많은 도움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집이든 시설이든 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난 안 돼, 난 할 수 없어 생각을 버리고 나와서 직접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탈자, 날자'는 '탈시설 자립생활, 이제 날아보자'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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