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1호 - 발행인의 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가 누리길....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4-01 조회수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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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가 누리길.... 


 이원교 소장(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랜만에 종이 위에 인사 글을 써본다. 바로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오랜만에 지면으로 회원분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웬 ‘종이 소식지’냐고 하겠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라떼’스러운 재도전을 해본다. 컴퓨터를 켜고 사이트를 찾아 클릭질을 하는 재빠름보다 칙칙거리는 LP의 해묵은 음률처럼 스치듯 지나치다 ‘성북아리’라는 제호에 호기심이 생겨 가볍게 종이 한 장을 넘기는 손길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해서라고 해두자.


성북아리는 성북센터의 ‘성북’과 우리말 ‘아리아리’의 합성어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찾지 못하면 길을 만들자.’라는 의미다. ‘힘내자’라는 의미도 있다. 얼마 전 소천하신 백기완 선생님이 외래어 ‘파이팅’이라는 말 대신 ‘아리아리’를 쓰자고 자주 강조하시기도 했다.


지난해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우리도 모든 것을 멈추고 양보하고, 인내하고, 그리고 떠나보내야 했다.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소위 ‘팬데믹’ 사태 속에서 장애인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코호트 격리’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집에서, 시설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격리’당한 채 살아온 장애인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또 다른 처참한 격리를 당해야 했다. 투쟁을 통해서 자가격리하려고 잠깐이나마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과정은 비상시기에 장애인들의 생존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신아재활원 집단감염 '긴급분산조치'를 위한 기자회견 모습. ⓒ비마이너


우리나라 인구의 5.1%를 차지하는 장애인(등록장애인 기준)이 코로나로 인한 전체 사망자의 21%, 즉 1/5을 차지한다. 장애인의 사망률이 비장애인의 약 5배다. 특히 신아원 사태에서 보듯 집단생활을 하는 시설 내 장애인의 문제는 심각하다. 코로나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처참한 생존권의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시설장들과 심지어 보건복지부조차도 외면하고 싶어 하는 ‘탈시설’이라는 명제를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천부인권이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주어지는, 법률이나 믿음보다 앞선 보편적 선험적 권리이다. 여자건 남자건,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유럽에 살아도 아프리카에 살아도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장애인의 생존권은 단순히 자본주의 복지체계로 해결될 수 없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의 문제이며, 인권은 동정과 시혜의 복지체계로 보장받는 것이 아닌 너무나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권이라는 명제에서 접근하고 출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한 과정을 거쳐왔으니 올해는 부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가 누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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