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2호 - 탈자, 날자] 시설 속에 ‘나’에서 세상 속에 ‘나’로....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5-28 조회수 :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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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속에 ‘나’에서 세상 속에 ‘나’로....



이원복(뇌병변장애, 63세)



내 기억에 네 살 때쯤 홀트에 들어온 것 같다. 처음 들어갔을 때를 기억해보면 외국인 할아버지, 할머니(홀트 설립자 부부)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홀트 아동복지회의 출발이 8명의 한국전쟁 고아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홀트는 커지고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비장애아동, 혼혈아 등이 많았고 입양도 많이 갔다. 그러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라지고 규칙이 생기고, 자유가 통제되기 시작했다.


 나는 홀트에서 크고 나이를 먹었다. 나름 공부도 하고, 일도 했다.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글을 읽고 쓰고, 숫자를 더하고 빼는 정도는 했다. 그래서 홀트 안에서 많은 일을 하며 나의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살던 젊은 날의 이원복님 


홀트에는 장애가 심한 영아부터 성인까지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했다. 나는 말리 언니(설립자 딸) 집에서 일하면서 주로 요리와 아이들 돌봐주기, 원내 매점 보기 등의 일을 하고 ‘용돈’을 받았다. 그러다가 홀트 안에 그룹홈이 생기면서 그곳에서 자립할 친구들을 위해 가사활동 등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40대 중반 즈음 나는 뒤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냥 참고 살다가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어 말리 언니에게 말하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내 상태를 보더니 놀라면서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했냐?”고 했다. 신경이 오르내리는 척추는 아니었지만 목뼈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목 수술을 했다. 1차 수술이 잘 안 되어서 나는 한동안 배에 음식물을 넣는 구멍을 뚫고 생활했다. 욕창도 생겼다. 그 당시 참 고생을 많이 했다. 다행히 2차 수술 후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남을 도와주며 살았던 내가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작은 변화가 다가왔다. 홀트 자활의집(여)에 살고 있는데 예전에 나와 함께 생활하던 장애여성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먼저 자립했던 그이는 “언니도 자립해 보지 않을래?”하고 제안했다. 나는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했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이는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와서 자립을 권유했다. 늘 자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설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 현재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이원복님이 책을 읽고 있다.   


나의 자립생활 첫 시작은 용산 행복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단기 체험홈 프로그램 참여로 시작되었다. 두 달 동안의 단기 체험이 끝나고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으로 오게 되었다. 성북 체험홈에서 3년 정도 살았다. 초기에는 생계유지비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오게 되어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러다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 알게 되어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했다. 수급비가 나오게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조금 나아졌다. 주민센터에서 블라인드도 설치해줬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니 내가 자립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홀트에서 나와 갑자기 자립하게 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겁도 났고 걱정도 되었다. 그때 곁에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계셔서 많은 의지가 되었다. 체험홈에서 생활할 때는 사실 홀트 때와 다를 게 별로 없었다.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맞춰 살아야 했다. 작은 시설과 큰 시설의 차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성북센터에서 진행한 이야기조각보 프로그램 참여는 참 재미있었다.


                                       
                                                             ▶ 외출을 마치고 귀가하는 이원복님.

 

성북 체험홈에서 나갈 때가 되어 살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참 많았다. 여러번 집을 보러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너무 비쌌고 싼 집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대아파트에 당첨되었다. 날아갈 듯 기뻤다. 그때부터 진정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TV도 사고 냉장고, 세탁기 각종 수납장도 구매했다. 그런 과정에서 돈의 개념도 알게 되었다. 늦잠을 자도 누가 간섭하지 않았고, 집안 곳곳을 맘에 들게 꾸미는 일도 참 좋았다. 


                                           
                                                        ▶ 책을 읽던 중 빵 터진 이원복님.


지금은 임대아파트라는 작은 집까지 갖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자립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책임감’이라는 것도 배웠다. 앞으로 내 몸을 더 잘 관리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자립생활을 제안해준 옛 친구, 자립생활을 지원해준 성북센터 많은 분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도움을 준 모든 분께 참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웃으면서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


* '탈자, 날자'는 '탈시설 자립생활, 이제 날아보자'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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