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2호 - 발행인의 글] 팬데믹 종식 이후를 꿈꾸며...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7-10 조회수 :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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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종식 이후를 꿈꾸며...


이원교 소장(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들이 정성을 들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편집한 『성북아리』의 1, 2호가 통합되어 지면으로 나왔다. 『성북아리』가 여타 소식지와 다소 차이가 있다면 단순한 홍보가 아닌 장애인운동의 현장 소식과 시사점을 알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센터의 소식을 전하는 기초 역할과 함께 현장 투쟁이나 활동가들의 고민 등을 함께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따라서 홍보와 사업적인 측면보다는 장애인운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어 유의미한 교류의 현장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진보 장애인운동계에 시사점을 담은 소식지가 귀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성북아리』의 발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성북아리』는 앞으로 온라인은 분기별로 연 4회, 오프라인은 연 2회 발행된다. 아직은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부족한 첫걸음이지만, 더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린다. 


 지난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선언했다. 범유행 또는 세계적 대창궐이 팬데믹과 동의어임을 미루어보면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팬데믹’은 그동안 의심할 여지조차 없던 명제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경제는 불안하게 요동쳤고, 사회는 공동체 역할을 해내지 못했으며, 그 가운데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은 가장자리에서도 맨 끝자리로 밀려나 분리되었다. 복지 시스템은 팬데믹 상황에서 장애인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선별 진료소는 장애인의 편의와는 거리가 멀었고,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방역시스템은 우왕좌왕했다. 결국 우리 사회 코로나19로 발생한 첫 사망자도 장애인이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장애인이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에서 빠졌고, 응급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사회적 약자가 누려야 할 권리가 실재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다. 해를 넘어 지속한 거리 두기와 격리 생활은 수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더는 타인과 만남이 즐거운 일만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고, 질병에 걸리는 것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시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내적으로 쌓인 불안이 해소될 길이 없으니 사람들의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다. 그동안 내재해 있던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사회적으로 만만하고 약해 보이는(그래서 자신에게 보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대상에게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시대다. 위기는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인터넷상에서는 장애인, 소외계층, 여성, 성소수자를 비난하기 일쑤이고, 약자의 권리를 ‘역차별’ 또는 ‘특혜’라며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 만연한다. 이전보다 한층 날카로워진 사회는 약자에게 삿대질하며 “불편한 것은 너만이 아니다.”라고 힐난할 뿐이다. 그럼에도 입조차 열 수 없다. 전염병을 명목 삼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타인을 혐오하고 책임을 덧씌우는 일과 코로나19의 종식은 엄연히 어떠한 역학적 관계도 없다.


 지금 사회는 장기간 지속한 거리 두기와 본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빠르게 잠식하여 가뜩이나 침체된 사회에 피할 수 없는 어둠의 그림자를 깔고 있다. 팬데믹이 엔데믹(풍토병)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공포, 아스트라제네카나 화이자와 같은 백신 부작용에 대한 공포 등…. 답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사회를 잠식하니 모두의 신경세포가 예리하게 깎여나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이다. 이러한 공포에 더해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장애인의 삶은 얼마나 척박할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종식 이후, 포스트 코로나라고 불리는 시대가 온다 해도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사그라져도 기존의 체계를 답습한다면 장애인은 코로나19 사태와 마찬가지로 인권의 한쪽 귀퉁이에 놓여있을 것이 자명하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스페인 독감이나 인플루엔자 유행, 메르스 사태에서 보아왔듯이 언제나처럼 급작스레 찾아든 재앙을 이겨내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방증하는 것처럼 가장 먼저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단면을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여야 한다. 거대한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핍박받는 민중 모두가 피해자임을 기억해야 하며, 피해자라는 동질감 속에서 함께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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