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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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 현장에서] 동정의 땅에서 권리의 들판으로 공간이동!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7-10 조회수 :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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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의 땅에서 권리의 들판으로 공간이동!

- 장애인권리보장법 ·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한다 -


정다운 활동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한민국 법에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까? 정답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1981년에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 그리고 이를 1989년에 전면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에도 ‘탈시설’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2009년 6월 4일, 장애인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 거주인 8명이 서울시를 상대로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며 마로니에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여전히 ‘탈시설’은 법적 근거에 의한 국가 정책이 아니다.


 국가 주도의 정책은 아니었지만, 지난 10여 년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이 이루어졌다. 또 활동지원, 자립정착금과 같은 지역사회의 공적 자원을 늘리는 대정부·지자체 투쟁이 조직되기도 했다.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이 어느덧 10여 년 흘렀고 지난한 투쟁의 결과로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시설에서 나가면 절대로 혼자서 못 산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탈시설한 뒤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정책의 방향이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으로 조금씩 바뀌면서 생겨난 변화이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탈시설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아직도 3만여 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서 살아간다. 그곳에 한 해에 5,800억 원(2021년 기준)의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


                                      
                               ▶ 양대 법안 쟁취 농성 131일째를 맞은 지난 7월 24일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선전전을 진행하는 모습.  


 이처럼 장애인 정책이 수용시설 중심에서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함에 따라, 관련 법 전면 개정 및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장애인 정책의 근간인 장애인복지법을 보자. 이 법은 1989년에 전면 개정된 이후 장애유형 확대 등 소규모로 여러 차례 개정되며 32년 동안 유지되었다. 따라서 최근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탈시설’의 법적 근거가 미비함은 물론이며, 장애등급제의 ‘등급’이라는 표현이 법률적으로 사라지기는 했지만, ‘장애정도’라는 기준을 두고 여전히 ‘장애’를 장애인의 의학적 손상 정도로만 정의하는 낙인의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혜와 동정의 시대를 끝장내고 권리의 들판으로 나아가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운동 단체들은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 21대 장애인 관련 법 제·개정을 입법 과제로 제시했고, 지난 3월 16일부터는 국회 인근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123일째(7/10일 기준)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지난 20대 국회에도 발의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장애인계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대안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오랫동안 법안 통과에 힘써왔지만, 실제 제정하는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운동과 연계해서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힘차게 전개했고, 문재인 정부 임기 초중반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시행을 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 이제 1년이 지나는 현 정세를 반영해 전장연 등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를 보장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한 개의 단일 법률만으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 요구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이라는 명칭의 기본법(모법)과 이 모법의 영향력 속에 작동하는 개별법을 종합 꾸러미로 구성해 여러 개의 법률을 함께 입법하는 형태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꾸러미’ 속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의 제반 권리를 규정하고, 이 권리가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며, 각종 서비스와 관련된 재원 확보를 위해 국가재정법 등 별도의 재정 관련 법률 제·개정 등을 담아내야 한다.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임소연 사무총장 등이 양대 법안 쟁취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함께 반드시 제정되어야 할 법이 바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지난 2020년 12월 10일 최혜영 의원 등 68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해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논의를 앞두고 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탈시설’을 법률적인 용어로 인정하고, 명확한 국가 책임하에 추진해야 할 탈시설 정책의 추진 체계와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한 탈시설 정책으로는 ▲탈시설 초기정착 지원을 위한 개인별 탈시설지원계획 수립, 정착지원금, 활동지원급여 추가 제공, ‘장애인지원주택’, ‘장애인주치의’ 제도 법제화 ▲장애인거주시설·정신요양시설 입소정원의 단계적 축소 및 10년 내 폐쇄 법제화 ▲장애인인권침해시설 제재 및 거주인 탈시설 지원 등이다.


 지난 6월 17일,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국회 앞 농성투쟁이 100일을 맞았다. 그러나 사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받기 위한 투쟁은 현재의 농성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1842일간 지속했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투쟁,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있었던 장애 대중의 치열한 투쟁을 계승해오고 있다. 장애인계의 오랜 염원인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요구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그만큼 더 무거운 사안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이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을 통해서 ‘탈시설 권리’, ‘지역사회에 통합하여 살아갈 권리’를 천명했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시혜와 동정 속에 소외된 삶을 살아온 장애인들이 권리의 들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변화를 책임 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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