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3호 - 탈자,날자] 사회 바람 쐬고 싶어서 나왔어요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11-04 조회수 :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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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바람 쐬고 싶어서 나왔어요.

 피용헌

 

안녕하세요. 제가 자립을 결심한 것은 사실 남들에게 지는 것을 죽어도 싫어하는 이유에서였어요. 그래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내가 못 할 거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모든 사람의 말과 생각을 바꾸고 싶었어요. 난 뭘 해도 잘될 놈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내 인생 열심히 잘살고 있어요. 비록 지금은 자립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이사하는 날을 기다리며 저는 어떤 누구보다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예민하게 자립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전의 나 피용헌이 아니에요. 저를 별 볼 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 취급한 예전 선생님들 코를 제가 납작하게 만들어 버릴 거니깐요. 제가 부모님 없이 혼자 어릴 적부터 컸지만, 지금까지 저는 잘살아가고 있습니다. 걱정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잘 못 살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난 어떤 누구보다 내 앞가림 잘해요. 내 인생을 제대로 똑바로 잘 살고 싶습니다.



 ▶ 용헌님이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 


저는 30여 년을 살았지만, 사실 제게 기대하는 사람도, 칭찬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격려와 지지를 받은 적도 거의 없었어요. 늘 꼴통 짓만 하고, 사고만 치고, 말썽만 부리는 저에게 모두 다 무관심했을 뿐이죠. 아예 관심을 두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저는 기대와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랑도 받지 못했기에 저 자신이 너무 싫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쉽죠. 선하고 바른길, 착한 길로 가는 길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요. 물론 다른 사람 욕한 것도, 때린 것도 제가 죽어도 절대 씻을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잘 알아요. 다 제가 벌인 일이고 평생 나쁜 사람일 뿐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죄를 짓고, 크고 작은 잘못을 했기에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저를 취급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근데 저는 하나도 꿀리지도, 신경 쓰지도, 견제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365일 내 인생 살아가기도 저는 매우 매우 바쁩니다. 나 혼자 인생 살기도 완전 바쁘거든요. 그럴 시간도, 여유도, 겨를도 없습니다,


 

 ▶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공부에 열중하는 용헌님. 

시설에서 우연히 창문 밖 세상을 보았어요. 웃고 울고 떠들면서 어울리고 시끌벅적하게 사람 냄새나는 그 모습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저는 시설에서 인지가 아주 좋은 편이라 젊은 남자 선생님들이 아주 편하게 잘해주셔서 잘 지냈어요. 제일 웃긴 게 무엇인지 알아요?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너는 이런 놈이고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네가 다 잘못한 거잖아라고 말하는 분들의 생각이에요. 그들이 정말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을 함부로, 자기들 입맛대로 말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부모 없는 게, 시설에 사는 게,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왜 죽을죄인가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겪지도 않았으면 우리 장애인들의 삶의 고충을 진심으로 0.0%도 진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말하지 말아요. 우리 중증장애인도, 발달장애인도 남들에게 관심 없으면 없지, 그렇게 천대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너를 위한 거야,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도 솔직히 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면서 마치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아요. 그렇게 쉽게 사람을 판단도, 평가도 하지 마십시오. 저는 피용헌입니다.



▶ 용헌님은 요즘 드럼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저는 제가 있었던 경기도 연천의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사실 제 인생을  다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저같이 쓸모없는 구제 불능은 이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니까 평생 이렇게 시설에서 살다가 죽을 마음으로 매 순간 살았어요. 눈치와 불안뿐이었어요. 자신도 없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없었어요. 그저 늘 시설에서 남이 해주기를 바랐죠. 정해진 시간에 밥 먹고, 프로그램  활동하고, 씻고, 티브이 보다가 자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여기며 생활했어요. 전 시설 생활에 아주 익숙했어요. 그렇게 26살부터 30살에 접어들기까지. 맘 편히 잘 지냈어요. 입소해서 초반에 적응하지 못한 것치고는 너무 잘 생활한 셈이지요.

 

그러다가 저에게도 기회가 왔어요. 중증장애인독립연대에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연계팀을 꾸려서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 시설에서 자립을 희망하는 거주인들과 독립연대 선생님들이 서로 짝을 이루어서 1~2시간씩 11로 자립생활 및 자립에 관한 상담과 면담을 하게 되었죠. 자립기술훈련 및 여가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쇼핑, 외부 나들이, 12일 여행 가서 체험활동도 하고, 사진도 찍고, 같은  제품이면서도 가격을 비교하면서 좋은 것을 고르는 ILP 자립생활기술훈련 등을 많이 했죠. 1+1, 2+2 상품과 물건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상품과 물건에 사은품, 떨이로 더 딸려 나오는 것, 이것을 샀을 때 더 이득이 많은 것을 고르는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도 알게 되었죠.


 

 ▶ 성북센터에서 자조모임을 하는 용헌님.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이 모든 책임은 결국 본인에게 있는 것도 배웠어요.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 자기 선택,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을 항상 강조하셨고, 이것이 자립하는 데 진짜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임을 하나씩 하나씩 배웠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또 무섭고, 불안하기만 한 저 자신이 자립해 시설에서 나갈 수 있다는 들뜬 설렘도 생겼어요. 그렇게 저는 자립을 갈망하고, 원하게  만든 동기도 되었고, 아무 생각 안 하고 시설 안에서 편하게만 살았던 저를  바꾸게  해주었어요.

 

사회에 나가면  무섭지만, 힘들어도 내 인생을  내가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나도 멋지게 내 인생 잘 살고 싶다고 몇천번씩 생각해요. 잠잘 때도, 일어나서도, 시설 생활 프로그램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들떴어요. 나도  자립을  할 수 있다니 너무 좋다는 생각이에요.

* '탈자, 날자'는 '탈시설 자립생활, 이제 날아보자'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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