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성북아리

[3호 - 특별기고] 평생 못 잊을 제주 여행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18 조회수 : 1503
파일첨부 :

[여행정보 나누기] 

평생 못 잊을 제주 여행


유재근 활동가(인천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어느 날 민들레센터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전체 여름 모꼬지 대신 활동지원사를 동반한 장애인당사자의 제주도 여행에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무작정 떠날 생각을 했다. 해당 프로그램 담당자에게서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렌터카를 무료(기름값은 자부담)로 빌려주는 제주사회복지사협회(064-702-3784)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운전면허증이 있는 배우 겸 활동지원사 박장용 님을 꼬셔서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 해당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과 무장애 여행코스를 짜달라고 부탁했고 그이는 흔쾌히 들어줬다.


나한테 ‘제주도’는 늘 아쉬움이 떠오르는 단어다. 왜냐하면 20년 전 내가 특수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는데 천지연폭포 말고는 제대로 즐긴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태운 특정버스안에서 도깨비도로 경험하기, 버스가 올라갈 수 있는 중간 지점에서 성산일출봉 보기 등 버스 안에서 차창 너머로 바라본 경험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제대로 즐긴 기억은 천지연폭포밖에 없었다.


11시 20분 출발 비행기라 최소 약 한 시간 전인 10시 15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우린 아침 8시에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해 공항에 9시 10분에 도착했다. 패스트푸드로 아침을 해결하고 탑승 수속을 마쳤다. 제주도행 비행기가 5분 지연되었고 12시 20분 마침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 제주공항에 도착한 나.


우린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계획대로 제주장콜을 타고 제주사회복지사협회로 가서 렌터카를 빌리려 했으나 첫 번째 돌발상황이 발생했다.(이번 2박 3일 제주 여행에서는 모두 3번의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KT의 통신 오류로 장콜이 먹통이 된 것이다. 참 난감했다. 그러던 중 장용 님이 위치 검색을 하더니 제주공항에서 제주사회복지사협회까지 왕복 1시간가량 걸리니 직접 가서 렌터카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난 1번 게이트에서 1시간 동안 여행으로 들뜬 사람들을 보며 기다리다 보니 렌터카가 도착했다. 그런데 렌터카 안을 보고 놀랐다. 전동휠체어가 세로로 두 대는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우린 렌터카를 타자 배가 고파졌다. 미리 짜둔 계획대로 30분을 달려 흙돼지떡갈비와 갈치회를 파는 전문점 금뽕똘(064-721-1111)에 도착했다. 입구에 턱도 없고 넓어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공사 중이라 장사를 안 한단다. 우린 당황했다. 두 번째 돌발상황 발생. 우린 어쩔 수 없이 첫날 저녁으로 계획했던 삼대국수회관 본점(064-759-6645)으로 다시 1시간을 달렸다. 흑돼지 보쌈인 듬베고기와 고기국수를 맛나게 먹었다. 삼대국수회관 본점의 정문은 턱이 없고 폭도 넓어 전동휠체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하주차장에서 나올 때 경사가 너무 심해 누군가 뒤에서 휠체어를 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 삼대국수회관 앞.



▶ 돔베고기와 고기국수.



우린 첫날부터 어그러진 일정에 마음을 다잡고 전장연 사무총장 박옥순 동지와 남편이 운영하는 삼달다방으로 가기로 했다. 삼대국수회관이 있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었다. 서귀포시로 진입하니 가로수에 귤이 열려 있었다. 나와 장용 님같은 도시촌놈(?)한텐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삼달다방은 3개의 컨테이너를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고 좀 더 안쪽에 삼달다방 본 건물이 있었다. 옥순 동지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해서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는데 다행히 그날은 삼달에 있었다. 옥순 동지와 그의 여자친구(애칭이 있었는데 까먹었다)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 초코가 만화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 삼달다방에서



우린 다른 손님 2명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옥순 동지가 관광객이 적고 오염되지 않는 밤바다를 보여준다기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바다에 도착하자 장관이 펼쳐졌다. 내 생에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 봤다. 옥순 동지가 새 휴대전화를 샀다고 자랑하면서 달빛을 배경 삼아 밤바다의 우리를 찍어줬다.


   
▶ 밤바다에서달빛을 배경삼아



밤바다에서 돌아온 후 게스트분과 옥순 동지의 추천으로 다음 날은 바다와 들과 말이 있는 신천 바다목장에 가기로 했다. 내가 평소 호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고 하니 그곳에 가면 호주까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삼달다방에서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밤 새 수다를 떨다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게스트하우스는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다음날 우린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신천 바다목장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  아침 바다에서 한 컷



아침 바다에서 신천 바다목장으로 걸어가는 중에 동네 험한(?) 개들과 마주칠뻔하기도 했다. 가는 길에 만난 동네는 조그맣게 정겨웠다.


   
▶ 바다목장으로 가는 길


바다목장에 도착하니 내 마음이 뻥 뚫렸다. 말 그대로 바다를 배경으로 넓은 들판에 말들이 뛰어노는 장소였다. 장용 님은 이런 장관을 보면 담배를 피워야 한다며 한 개비를 꺼내물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정말 호주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 바다목장에서



바다목장에서 돌아와 마을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린 무장애 사려니숲으로 가기로 했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인 ‘살’ 또는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 이름에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산에 참나무가 우거져 있어 공기가 좋았고 산책로마다 나무가 깔려져 있어 무장애라는 말이 실감 났다.


   


 
▶ 무장애 사려나무숲길



무장애 사려나무숲에서 산바람을 실컷 맞은 숙박 예정지인 난타호텔로 갔다. 호텔에 도착해 정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상상에서는 호텔 정문이 아파트처럼 계단 옆에 경사로가 있는 그런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턱이 아예 없었다. 난 평소 아파트의 그런 구조물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왜 비장애인이랑 장애인 다니는 길이 달라야 하는지... 우린 피곤해서 난타호텔에 저녁까지 쉬다가 제주도가 고향인 아는 형의 추천으로 말고기를 먹으러 말이랑 흑도새기랑(064-744-7031)을 가기로 했다. 


말이랑 흑도새기랑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입구에 턱이 없어 들어가기 쉬웠다. 마침 말고기 코스요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구이와 육회를 따로 시켰다 가격 면에선 코스요리가 싸 마음 아팠(?)지만 구이는 소고기보다 쫄깃했고 육회는 글로 표하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었다. 


말고기를 먹고 호텔에 돌아와 쉴새 없이 설사를 했다. 마지막 돌발상황 발생이었다. 결국 3일째 일정은 바로 서울로 가는 공항행이었다. 무척 아쉬웠지만 삼달다방의 옥순 동지, 2박 3일 동안 나의 팔과 다리가 되어준 장용 님 덕분에 평생 못 잊을 제주 여행이 되었다. 


      
▶ 말이랑 흑도새기랑에서


이전글 [3호 - 사진이 있는 글] 어떤 맹세
다음글 [3호 - 서로 인터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