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 성북아리는 성북 + 아리아리를 합친 말입니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자,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자”라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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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 탈자,날자] 내 몸은 그냥 내 몸인데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3-30 조회수 :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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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은 그냥 내 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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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설의 일상

 

어느 날 기억에서 깨보니깐 나는 평택의 ○○아동재활원에서 살고 있었고 이곳에서 낙엽 단풍 떨어지고 겨울이 올락 말락 23살까지 살았어. 반복되는 일상들…….

아침 6시 기상, 7시 반 밥 먹기, 8시 반에 방송으로 음악이 나오면 아침기도.

“야 무릎 꿇어. 손 모아. 눈 감아라.”

우리는 똑같은 자세로 기도해야만 했어.


아침기도 : 사랑의 하나님. 지난밤 우리를 지켜 주시고 좋은 아침을 맞게 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오늘 하루도 언니 오빠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다투거나 미워하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세요. 학교에서나 집에서 사랑받는 어린이가 되게 해 주시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루를 잘 보내고 저녁에는 감사의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며 우리를 언제나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매일 매번 같은 기도 지겹다 지겨워. 아마 10년 넘게 같은 기도 했을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음. 원장, 총무, 생활지도사, 양호 쌤 라운딩. 9시에 시설 옆 특수학교 가서 오후 3시 반까지 있었음(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한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한문 조금 배웠음. 많이 까먹었다. 대학교처럼 제과·제빵부에서 2년 동안 배웠는데 써먹을 일이 없어서 까먹었네). 고2 때까지 학교 갔다 오면 그냥 멍하니 4시 반까지 방에 있었고 저녁 먹고 티브이 보고 8~9시에는 잠을 자야 했어.




고 1~2학년 때부터인가 시설의 변화가 시작됐어. 원장님도 바뀌고 각방은 쌤 두 명이 2교대로. 남자 방 몇 명. 새 남자 쌤도 들어왔어.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졌어. 연극, 악기, 합창, 십자수, 휠체어댄스, 태권도, 사물놀이……. 태권도만 빼고 사물놀이는 잠깐 하다 말았어. 난 “빨리 걷고 뛰는 게 안 되니 하지마!”라고 내쫓았어(누가 하고 싶어서 했냐? 지들이 넣어 놓고). 얘들이 자꾸 음식으로 외우면서 박수로 연습해.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사물놀이 악보를 외우는 게 안되니까 음식으로 외우고 연습을 시키는 거였어(귀에 들려오니깐 나도 저절로 외워져, 태권도도 마찬가지고). 이외에 난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연극은 녹음해서 내가 행동만 하면 됐고, 악기는 원래 탬버린 치라고 했는데 실로폰 치고 싶어서 동생들 거 치면서 놀았어. 내가 실로폰 치는 걸 보시더니 다 놀라는 거야. 원장님이 “생각보다 잘 치네? 얘 써먹을 데 있겠다 실로폰 줘 봐. 계이름 다 외워서 칠 수 있게 해.” 뭐 하려는 건가? 뭐 써먹을 데가 있길래?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나쁘지 않았어. 워낙 실로폰 치는 걸 좋아해서 시시때때로 쳤어. 그만 치라고, 시끄럽다고 할 때까지 쳤으니. 20~30개 노래 계이름을 다 외워야 하니까 골머리 아프긴 했어. 그러다 보니 노래 가사는 모르는데 계이름은 아는 게 많았어. 합창은 그냥 립싱크했고, 십자수는 바늘만 누가 실에 끼워 주면 느리게 하긴 했어(무당벌레, 토끼, 그 담에 모르겠다. 눈 빠지는 줄). 휠체어 댄스는 그냥 손만 따라하면 됐어.


뭔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은지 다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행사 때는 많은 걸 하루에 다 하느라 미치는 줄. 조명은 덥고, 옷은 불편하고, 시간 맞춰서 무대 뒤에서 옷을 입히고 벗기고 개난리 났고 바빴어. 근데 바쁜 일상이 너무 좋았어. 왜냐면 방 쌤 눈치 볼 일이 없지, 방콕 안 해도 되지……. 몸은 힘든데 이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니깐 기분은 좋았어.

시설의 하루 일과를 쓰고 싶었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이 있어. 진 원장님이랑 3~4년 뒤에 원장이 또 바뀌었거든. 이 원장님이야 둘이 공통점이 있는데 장애인에 대해서 뭘 몰라도 너무 몰라. 한숨만 나왔어.


• 너만 보면 어지러워


​진 원장님은 상처가 되는 말을 쏘아붙여. 막말을 해. 나한테 자꾸 “너만 보면 어지럽다”고 하면서 “테크노 춤 그만 추라고 가만히 좀 있어”라고 소리소리 지르더라. 쟤 왜 저러나 싶었는지 날 한참 쳐다보고 그냥 지나가시더니 내 뒤에 몰래 와서 뺨을 세게 세 대 때리는 거야. “야 야 야 (머리 툭툭 건드리면서) 좀 가만히 있어. 도리도리하지 말랬다. 좋게 말할 때 들어라. 실로폰 칠 때도 가만히 쳐.” ‘내가 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이냐?’ 속으로 그랬다. 억울하고 분했어. 그냥 내 잘못이라고 느꼈지. 사실 왜 움직이는지 나도 몰라. 나도 알고 싶다. 나도 내 몸을 모르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때려도 울지 않았으니 덜 맞았어. 안 울려고 애 많이 먹었어. 맞으면 물론 아프지.


• 누구를 위한 아멘 일까?


이 원장님 때는 프로그램을 거의 없애고 주여 아멘 위주로 사시는 분이셨어. 하나님 타령을 어찌나 하는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복달해. 손찌검은 안 했는데 내 정신을 힘들게 한 분이셨어. 원장님이 아멘 위주로 하시니깐 시설도 아멘으로 변해 가는 거야. 원래 일요일 두 시 예배만 봤는데 이 원장님이 오시면서 뭔 예배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일요일만 오전 11시, 오후 2시, 저녁 7시 다 참석하라는 거야. 나도 그냥 몇 개월은 다녀봤어. 어느 날 아멘 하는 게 싫었고 강요가 되어 버리니까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서 2시 예배만 가고 나머지는 교회를 안 갔어. 

어떤 동생이, “언니, 왜 교회 안 가?”

“난 하나님 안 믿어. 맘에 없는 아멘 하기 싫어서 교회 안 가”

그 동생이 원장님한테 얘기했나 봐. 나 보고 원장님 방으로 내려오라고 방송한 거야. 난 영문도 모른 채 내려갔지. 들어가자마자 나 보고 “악마를 키우고 있다, 너 몸 이러는 거 하나님 안 믿어서 그렇다, 하나님이 고쳐 줄 거다, 교회 다니고 하나님을 믿어라, 교회에 취직할래? 다른 시설로 갈래?” 하길래 이곳에 있겠다고 해버렸어. “조건이 있는데 취직시켜 주겠다, 목사님 일 도와주고 하나님을 믿어라. 온갖 예배를 나와서 드려라.”라고 하더라고. 5~10만 원 월급 받고 일했어. 목사님은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켰어. 교회 정리랑 청소만 하라고 했어. 가면 갈수록 일이 많아지긴 했어(특송은 원장님이 네가 책임지고 하라고. 그래서 수화, 율동, 워십을 가르치면서 나도 해야만 했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니깐 죽을 맛이었어). 목요일만 빼고 거의 예배야. 나와 상관없는 예배는 목사님이 방에 있으라고 하셨는데 방에 있어도 예배드리는 건 똑같았어. 귀는 들리니깐 아멘 하는 거랑 똑같지. 나는 일주일에 5~6번만 예배드리면 되는데 12~13번 드리는 셈이었어. 아휴 지겹다 지겨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찬양이 있는데 똑바로 보고 싶어요. 가사가 기분을 안 좋게 해.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게 하면서, 죄인 같은 기분이 들게 하면서. 기분 안 좋게 하는 경우가 있어.

진 원장님과 이 원장님은 혼내는 방식이 다른데 나한테는 상처만 됐어. 왜 혼나야 하는지, 뭐 잘못했는지,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어. 항상 기죽어 있고 손만 올라가도 몸이 겁먹고, 휴 이러니 맨날 울상이지.





• 왜 나랑 같은 사람이 또 있어?


​어느 날 갑자기 티브이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언니다, 언니가 왜 티브이 나와?” “나 아니거든.” “너 맞잖아.” “자세히 봐, 얼굴” “아니구나, 왜 언니랑 같은 사람이 있어?” “글쎄, 글쎄다.” 첨엔 나는 뇌병변 장애인이 티브이에 나오니깐 화가 나는 거야(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 장애 극복한 장애인들만 나와서 방 쌤이 나보고 ‘저 몸처럼 심한 게, 저 정도 아닌 게 다행인 줄 알아. 저 정도 아닌 게 감사한 줄 알아. 너도 극복해야지.’ 그런 눈빛을 쏴 보내는 거야. 밥도 흘리면 안 돼, 똑바로 걸어야 해, 글씨도 작고 예쁘게… 뭐든 열심히 하라고 강요해.


• 숨죽이고 숨어


더 무서운 건 잠을 편히 못 자겠더라. 밤 9시에 불 끄면 방 쌤은 스탠드 켜고 티브이 봐. 난 쌤이 잠들어야 새벽에 편히 잘 수 있었어. 내가 긴장하면 몸이 더 움직여. 내가 안 자는 걸 쌤이 아셨나 봐. 난 항상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거든. “야 안 자는 거 알아. 빨리 자라.” (안 졸린 데 어떻게 자지? 또 맞으면 어떡하지?) 공포감 속에서 이불 뒤집어서 쓰고 이불 잡고 있고, 한쪽 팔은 눈 가리고……. “안 잘 거면 일어나서 벌서!” 나는 벌서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소리 나는 이불을 싫어한다(움직일 때마다 이불, 베개에서 소리가 나는 게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 뒤집어쓰는 게 공포감은 있었지만 그나마 이불에 숨어 있는 게 편하고 쉴 수 있었던 거 같아.


• 내 모습이 싫다 싫어


‘다들 왜 날 못 잡아먹어서 난린데?’

속으로 그랬어. 살기가 싫은 것보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 이게 지속되면 죽지 못해 그냥 사는 거야. 아무 느낌이 없어져.

내 모습이 없어 보이는 멍청이. 한숨만 나왔지. 그 당시에 나도 나 같은 장애인이 티브이에 나오는 게 솔직히 싫었어. 왜 싫었냐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데 티브이에 나온 장애인은 더 싫었어. 내가 왜 움직이는지 모르겠는데 남은 알겠어?

시설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다 자기 장애에 대해서 모르는데 어르신들은 모르지. 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보면 안 되나? 왜 내 모습을 미워하고 더 싫게 만들어. 안 그래도 내가 움직여서 골치 아픈데.





• 터치 터치


18~20세가 되면 이 시설에서 나가야 하는데 성인 시설 안 가겠다고 울고불고 원장님한테 사정해서 23살까지 버텼어. 스물세 살 10월 31일인가? 작은 시설 그룹홈으로 옮겨졌어(시설이 아니라 가정집이라고 해서 가겠다고 한 건데 속았어. 가정집인데 작은 시설이었어). 24살에 그룹홈 쌤을 통해 노들을 알게 되어서 야학을 다니게 됐고 우연히 자립을 알게 되어서 25살 여름에 자립하게 되었어. 시설에서 나와도 익숙해진 시설 생활이 몸에 남아 있는 거야. 새 활동지원사, 새로운 사람이 별 뜻 없이 내 몸을 만지면 몸이 반응이 와. 두려워져서 몸은 소름 돋아서 막 화가 나는 거야.

특히 새 활보가 나 도와준다고 안 물어보고 내 몸에 손대면 질색 팔색하고 싫다고 팔을 들다가 내린다, 아니면 사람 손을 잡고 내리거나(‘싫어 싫다고’ 속으로 그런다). 내가 싫은 내색을 해서 활보가 당황할 정도로. 내 몸에 손 좀 대지 말라고 짜증 부린 게 생각나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내가 노들 연극반 수업 들을 때 있었던 일인데 미진이 기억하려나? 들어가서 두세 번 수업했나? 모르겠는데 미진이랑은 그때 당시 친구 사이가 아니고 그냥 연극 쌤이었어. 내가 수업하다 운 적이 있었어. 난 교실 바닥에서 수업하는 게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적응하니 나중엔 좋았어. 미진 수업은 내게 말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 몸 움직이고(그때 당시는 정말 빡세게 수업했어. 몸은 힘든데 정신적으로는 안 힘들었어.) 자기를 표현하면서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진짜 좋았던 건 그냥 나로서 봐줬거든.

쌤이 수업 도중 바닥에 굴리면서 나한테 자꾸 터치하는 거야. 자기 몸을 갖다 대고 수업 진행을 하시는 거였어. 내가 피해 다녔나? 내 몸에 쌤 손을 잡고 내렸나? 아마 난 몸을 비비는 게 싫었나 봐. 그 순간 난 울었어. 그렇게 많이 스킨십한 적이 없었고, (그 시기에 날 성추행 한 사람이 노들에 있었거든. 그놈 왜 자꾸 내 눈에 보이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보여) 상황이 겹쳐서 이게 뭐지? 우는 거 보여주기 싫어서 뒤돌아서 울었어. 미진이 “왜 울어요?” 물어보는데 난 아무 말도 못 했어.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1년이 지났나? 쌤이 구르면서 터치하는 동작을 하자는 거야. 나한테 물어보더라. 누가 내 몸에 터치하는 거 싫다고 내가 터치하는 건 괜찮다고 하니 그럼 지우랑 해보는 건 어떠냐고? 장애상 지우가 날 건들 리 없고 괜찮다고 말했어. 그날 수업 잘 마쳤어. 안 내키긴 했는데 해본 건 잘한 거 같아. 미진이가 내 몸 손대도 해치지 않다는 거 아니깐, 물어보지 않아도, 스킨십해도 별 반응이 없다. 근데 스킨십 터치 안 하니깐 몸도 까먹나 봐. 피하지는 않는데 몸이 긴장하거나 굳거나 그래. 자꾸 해야 몸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나 봐.

그리고 이건 중요한 건데 내 몸이 적응해야 할 게 있어. 처음 활동지원사를 만나면 내 몸에 손대는 자체가 싫긴 싫다.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맡겨야 할 순간이 하루에 여러 번 와서 힘들어(먼저 도와주겠다고, 먼저 해주겠다고 내 몸에 손대면 막 화난다. 화를 참느라 애먹어). 그런데 이건 내가 서비스받으려면 감당해야 해. 인내심 으악~. 1년 된 활보 쌤은 날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깐 도움받아도 별 반응이 없다.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 안 하니깐.


• 너의 몸은 너의 몸인데


남이 내 몸을 터치하는 게 싫어하니 남들도 싫어할 거로 생각해서 웬만하면 남의 몸을 안 만진다. 터치할 일이 있는 경우는 이런 거야. 누가 10~30분 뒤에 깨워달라고 할 때, 이름을 불러야 할 상황일 때, 도움받아야 할 경우만 어쩔 수 없이 남을 만져. 그 밖에는 버스, 지하철, 택시, 비행기, 밖에서 밥 먹고 차 마실 때 등등. 내가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사람들을 터치 안 하려고 애쓰는데 팔 터치는 하게 돼. 그럴 때마다 티는 안 내는데 내 몸을 움찔하고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갑자기 날 때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맞고 있으면 사람들이 도와줄까, 나 몰라라 할까? 그냥 방치할까? (신고는 하겠지? 근데 액세서리나 돈 뺏기는 거 보고도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인데) 생각이 들곤 했어. 아는 사람이 옆에 같이 있어도 완전 편하지는 않은데, 친구는 그나마 조금 안전하니까. 팔 터치도 가능. 안 하려고 애 써봤자 나만 일이 더 많아져(안 그래도 생각 많은데). 사실 남친 생기면 스킨십은 많이 하는 편인데 좋은 날도 있고 싫은 날도 있고 내가 뭐하는 건가 생각이 들 때도 있기도 해(스킨십이 지루해서 데이트하고 싶다고 나가자고 해도 집에 있자고 하고).


• 오래 안길 때 뭉클해


자립하기 전에 사회 적응 훈련 시킨다고 이리저리 갔다 오라고 나를 자꾸 내보냈어. 그룹홈 살 때라 쌤이 사람들 시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움츠리지 말라고, 내 또래 친구들 만나라고 이리저리 갔다 오라고 보냈던 거 같아. (송파구에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퍼포먼스 하는 곳이었어. 프로그램에 잠깐 참여했는데 몇 번 참여하다가 조용히 안 가버렸어. 얼마나 싫었으면 연락 안 받고 그랬겠어. 이거 참여하려면 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야. 퍼포먼스 하려면 온갖 스킨십을 해야 하는 거였어. 그 당시에 이게 스킨십인 줄 몰랐어. 내가 몸으로 움직이는 거 좋아하는데 거기서 서너 번 만난 사람들한테 서로 안기는 거 하는 거야. 헐. 지금도 기억하는데 내가 안기는 걸 모르더라. 사람들이 안아주면 내가 얼음이 되어서 차렷을 해. 아무 감정이 없고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쌤이 안아주면서 “너도 안겨봐.” 내 귓속말로 “계속 차렷 자세로 있을 거야?” 내 손 잡고 자기 등을 감싸 안는 거야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뭐야? 뭐지? 이 감정? 계속 두 시간 내내 안기니깐 안기는 방법을 배웠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 몇 년이 지나니깐 안기는 게 뭉클하다는 거, 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 느꼈어. 가끔 안아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 나한테 신경 꺼줄래?


나는 어디를 가든 주목을 받고 시선이 나한테 오고 뭔 관심들이 많은지 한 소리, 두 소리, 세 소리, 한마디씩 해. 전동휠체어 타니깐 한번 쳐다봐, 장애인이라서 쳐다봐, 옷차림도 위아래로 스캔해.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

겨울에는 “춥겠다. 목도리라도 하지, 옷이 얇다. 하나 더 잠바 입지. 이 겨울에 무슨 스타킹이야?”

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활보가 그냥 말 건네줘.

“안 춥대요. 더위를 많이 타요.”

여름에는 “누구 꼬시려고 다 벗고 다니냐? 남자들이 좋아하겠다. 담에 속옷 입지 말고 옷 좀 입어.” (왜 반말이야 내가 뭘 입든 뭔 상관?)

“전동은 얼마에요? 몇 킬로? 부모님 같이 살죠?” 활동지원사 보고 “엄마세요?” 물어보고, “저런 저런. 쯧쯧쯧 안됐네.” “(날 보면서) 왜 그러세요? 아파요? 왜 움직여? 가만히 못 있어요?” “교회 성당은 다녀요? 우리 동네 교회로 와.” “폰 잘 치네. 똑똑하다, 혼자 잘 다니네. 이건 기특해서 주는 거야. 용돈 해(안 받음).” “비 오는 데 집에 있지.” 세상 참 좋아졌네. 장애인들 너나 나나 다 나오고 세금을 왜 이런데 써(이말 제일 듣기 싫긴 해) 등등. 이거 중에 꼭 하나는 엘리베이터, 지하철, 공공장소에서 듣는다. 더 심한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산 귀신아, 물러가라.” “ㅅㅅ 성관계는 해?” 등. 더 심한 말도 있는데 못 쓰겠다. 이런 말을 하도 들어서 익숙해서 대부분 하도 듣는 얘기 들으니깐 듣는 둥 마는 둥 무시해 버린다.

왜 나한테 관심들이 많냐. 무슨 상관인데? 나 혼자 조용히 다니고 싶어. 나한테 말 좀 그만 걸어주고 신경 꺼줘. 도와달라고 할 때는 무시하는데 뭔 질문들이 많니? 알아서 뭐하게? 님들이나 잘하세요.


※ 필자의 요청으로 필명을 씁니다.


* '탈자, 날자'는 '탈시설 자립생활, 이제 날아보자'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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