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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 기고]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공약과 ‘구멍 난 권리’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4-21 조회수 :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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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공약과 ‘구멍 난 권리’


이재민 활동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



최근 한 달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장애인 혐오 조장 발언들과 유언비어 유포로 장판의 분노가 뜨거웠다. 특히 이준석 대표 발언 중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국민의힘 이동권 공약은 내가 만들었다. 전장연보다 더 진보적인 공약일 것”이라는 말이다. 애초에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등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진보, 보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기 전에 권리보장을 위한 구체적 약속과 실천적 방안들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지는 모습이다. 권리에 대한 인식조차 부재한, 자신은 혐오주의자가 아니라며 자화자찬 일색인 미래의 여당 대표, 그리고 이에 기댄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정책 공약에 왜 그렇게 많은 구멍이 있는지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다.


유리창의 한가운데가 깨져 있다(출처: 픽사베이)

우선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공약을 단편적으로라도 살펴보자. 윤 당선인의 공약은 크게 노동, 이동, 복지, 안전, 문화예술, 건강 의제로 구분된다. 장애 유형 중에는 발달장애에 대해 공약을 포함했다.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명목하에 ‘개인예산제’를 중점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을 의제별로 뜯어보며 이준석 대표의 말이 정말 사실인가 되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이준석 대표가 자랑한 이동권 관련 공약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첫 번째는 특별교통수단, 즉 장애인콜택시의 법정보장대수를 현행 150명당 1대에서 100명당 1대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리프트 설치, 손실 보전 등의 민간택시 지원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준석 대표가 직접 설계했고 ‘진보적’이라는 시외·광역·고속버스 저상버스 도입이다. 하등 진보적이지도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염불이다. 


우선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지자체 자율에 맡겨져 있으며, 현재 150인당 1대로 정해진 법정보장대수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국 평균 92.7%, 대도시 평균 82.0% 수준이다. 또한 지역별로 운영시간, 이용금액, 운행범위, 지역 외 탑승 등 운영방식이 달라 야간에 급한 일이 있거나 다른 시도에 볼일이 있어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심지어 어떤 지역은 전날 예약해야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이동’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면 누구나 가능해야 한다. 낮에, 지자체에서 정한 범위만, 심지어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이동권을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교통수단과 일반택시를 비교해보라. 그동안 진보 장애인계에서는 법정보장대수의 완전 충족과 함께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고 지원을 통한 24시간ㆍ즉시콜ㆍ광역이동 의무화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동을 단순히 운행 대수의 문제로 치부하고 양적으로만 측정하려는 공약이라니 애초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정말 깊은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공적 책임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교통수단의 민영화(민간택시 지원)는 더욱 말이 안 된다. 


이준석 대표가 자랑한 세 번째 공약, 시외ㆍ고속ㆍ광역버스의 저상버스 도입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 대표가 매도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4년부터 설날, 한가위 등 명절 전후로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장애인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다양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해 중증장애인들이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가 개발되었고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광역급행버스도 지금 개발 중이다. 이준석 대표가 그렇게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이 있었다면 새내기 정치인이었던 그 당시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014년 1월 27일, 장애인들이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속버스터미널을 점거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 비마이너)


장애인 노동권과 관련된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도 처참한 수준이다. 장애인들은 차별적인 임금체계와 고용구조에 늘 노출되어 왔고 현재도 그렇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 보장을 규정한 최저임금법에 중증장애인은 예외이다. 경쟁과 효율에 기반한 능력주의는 장애인의 고용기회를 박탈한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로서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부담금(벌금)으로 대체하는 대기업이 대부분이다. 인사체계가 유동적인 중소기업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고용 정책은 ‘4차산업형 장애인 인재 육성 및 장애인 고용 기회 확대’라는 단 한 줄에 그친다. 장애인이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직무능력을 갖추지 못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손상에 대한 장애를 해소할 일자리를 사회가 개발할 책무는 없는가?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능력이 없어 노동할 수 없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로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조기 개입에 관한 공약을 살펴보자. 윤석열 당선인은 발달장애를 등록과 무관하게, 확인 시 바로 재활치료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조기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은 발달장애에 필요한 국가 제도가 재활치료가 밖에 없냐는 것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전 생애에서 영유아기만 부쩍 부각한 이유가 무엇이냐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계의 주된 요구안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24시간 지원체계를 갖추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건의료적 개입뿐 아니라 활동지원 24시간(자립권), 평생교육(교육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노동권) 등 인간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들이 전제되고 지역사회가 담보해야 할 역할 전체를 포괄한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인이 발달장애인을 위해 내놓았다는 공약은 발달장애인을 치료가 필요한 개인으로 규정하고, 지엽적인 수준의 서비스만을 담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예산제 부분이다. 윤 당선인은 개인예산제를 마치 개개인이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 자유롭게 지급하는, 개인 맞춤형 지원체계의 초석을 제공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예산을 사용하기에 서비스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지금까지 시행해왔던 핵심 정책들도 지원이 미진한 상태이다. 즉, 장애인의 권리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예산제를 시행하는 것은 반쪽(혹은 한 조각)짜리 빵을 사람 수에 따라 나누는 것에 불과하다. 당사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하기는커녕 정부가 지원해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미루는 것이다. 개인이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서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핑계만 제공할 가능성이 큰 제도이다. 


정리해보자. 윤석열 당선인이 약속해야 하는 공약은 이것이다. 장애인의 권리보장은 장애인 권리예산에서 시작한다. 모든 지역에 법이 보장한 만큼의 장애인콜택시가 24시간 내내 예약 없이 운행하고 이를 총괄하는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 등을 위한 이동권 예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대로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주거 제공 및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 등의 탈시설 예산, 능력주의ㆍ비장애중심주의적인 교육 현실 속에서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권 예산, 재활이 붙은 기만적인 직업훈련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을 규정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 노동권 예산 등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사회에 실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권리예산은 그 시작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현실과 괴리된, 위와 같이 허황된 립서비스를 멈추고 장애인계에서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확답과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최동운 활동가의 머리카락이 담긴 상자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탈시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장애인권리예산을 약속해주십시오!'라고 써 있다.(출처 :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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