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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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 서평]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5-03 조회수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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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렇게 살아도 되는 집은 없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홍성훈 활동가 /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삶에서 어느 지역, 어떤 집에서 거주하느냐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프리미엄’이 붙은 아파트 광고가 계속 노출되는데, 광고를 보고 있으면 그 아파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품격’이 저절로 높아지고 세상 모든 만사가 매끄럽게 풀릴 듯한 착각마저 든다. 광고는 우리의 욕망을 충동질한다. 빚을 내서라도 내 집 한 채 마련하는 일이 공공연한 욕망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에서 만들어진 욕망이 대개 그러하듯 집을 향한 욕망은 끊임없이 비교 대상을 필요로 한다. 나보다 더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사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낙오자’로 판단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듯 하층 계급은 냄새와 같은 원초적으로 불쾌한 느낌으로 고착화한다.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이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냄새로 표상되는 가난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집이 계급을 규정하고 냄새가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이 사회에서 ‘쪽방’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난을 내보이는 일이다. 또한 가난은 자주 어떤 이의 ‘게으름’을 드러내는 징표로 왜곡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홈리스행동 기록팀이 작업한 『힐튼호텔 옆 쪽방촌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후마니타스, 2021)는 이 불합리한 전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양동’으로 불리는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 강성호, 권용수, 김강태, 김기철, 문형국, 이석기, 이양순, 장영철(이들 중 대부분이 가명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신종호, 이동현의 구술생애사를 담고 있다. 구술생애사 작업이 그렇듯이 인터뷰한 이들의 유년과 현재까지의 삶을 반추하면서 쪽방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가난의 토대 위에서 쌓아 올린 한국 사회 경제적 기반의 실상을 드러낸다. 흔히 쪽방촌 주민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들은 대개 생애 내내 치열하게 일했다. 소위 밑바닥 노동이라고 불리는 험한 일이 이들의 몫이었는데, 이 밑바닥 노동 시장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가족의 부재였다. 날 때부터 물려받은 가난은 대개 가족 간 유대를 허물어뜨리는 지렛대가 되었다. 아버지, 남편이 자행한 상습적인 가정폭력 또한 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노동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계기를 제공했다. 한 사람의 생애 대부분을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울타리가 없는 이들은 스스로 보호해야 했다. 세간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이들은 일평생 노동했다. 그러나 비빌 언덕조차 없는 이들의 노동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부 바쳐졌고, 늙고 병들어 ‘노동할 수 없는 몸’이 되자 쪽방촌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노동할 수 없음’을 가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낙인찍는다.

   그 낙인을 의식하듯이 인터뷰에 참여한 쪽방 주민들은 대부분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동했는가’를 열변한다.


   나는 다른 일도 많이 했지. 공사판 잡부 일도 했고, 식당 가서 그릇도 닦아 봤고, 요리도 해봤고. 식당도 한 번 해보다가 사기도 당해 봤고.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이 내 노력한 만큼 먹고살겠다 하니까 쪽방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내가 먹는 거 내가 책임지겠다 해서 수급자가 되고, 수급자가 되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이래서는 돈이 안 되겠다 싶어 운동 삼아 파지라도 해보겠다 하면서 살고 있어(199쪽, 권용수 구술).


   한편으로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이지만, 노동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노동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적 관계망이다. 사회적 관계망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자, 설령 위험에 처하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가의 책임을 가족에게로 떠넘기는 시스템 아래에서 가족을 벗어나면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관계망이 부재한 개인은 사회적으로 취약해진다.


   쪽방촌 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어떤 위험에 놓이는지 절절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대부분 노숙의 경험이 있는데, 그때 유일하게 이들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원과 연결된 브로커들이었다. 사기꾼들은 이들의 명의를 대여해 수백 대의 핸드폰을 개통하거나 유령 회사를 세워 빚을 늘렸고 정신병원과 연계된 브로커들은 이들을 회유해 강제 입원시킨 다음 병원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즉 그들은 한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이윤을 가져다주는 수단으로써 이용된다. 온갖 협잡에 시달리고 나면, 남겨진 것은 엄청난 빚과 약해진 몸뚱어리뿐이다.


   반면에 예외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바로 그 자신이 범죄자가 되어 똑같은 수법으로 착취한 이도 있다.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복잡 미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약자를 향한 착취가 개인의 악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 구조로 발생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책의 작가들은 쪽방촌 주민의 ‘범죄’를 왜 굳이 실었을까? 이런 식의 서술이 쪽방촌 주민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강화하지는 않을까? 이에 답하듯 작가 최현숙은 이렇게 썼다.


   “(인터뷰이가 범죄 이력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싣는 데 동의를 한 덕분에 ─ 인용자 추가) 우리는 명의도용과 관련한 그의 범법 내력을 보탤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삶의 덩어리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분열적인지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소위 “착한” 소수자로 기록되는/기록하고 싶은 화자/청자 모두의 허영을 깰 수 있었고, 우리가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유를 다시 벼리게 했다. 그들에 대한 기록이 고통의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록의 목적은 화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들을 거쳐 왔는가를 드러내고 그에 연관된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책, 223~224쪽)


   생애 내내 가난했던 이들은 노년에 이르러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쪽방에 몸을 누인다. 쪽방에 거주한다면 사생활을 침해받기 쉽고, 주변 소음에 자주 시달린다. 그러나 그 공간마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본은 양동 재개발로 이윤을 얻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을 하나둘 쫓아내고 있다. 주민들은 정부가 나서서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대책 중 하나는 임대아파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임대아파트만 공급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구술자들은 쪽방촌 주민 중 임대아파트에 선정되어 거처를 옮겼지만, 대부분 쪽방으로 다시 이사 오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쪽방촌 주민과 아파트 주민들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에서 쪽방으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하면 수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과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아파트 주민 간의 차이를 느껴 쉽게 섞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고로 가장 좋은 대책은 지금의 양동을 재개발하되, 일정 부분을 임대주택의 몫으로 두어 주민들의 주거권과 사회적 관계망을 동시에 보장하는 것이다. 아무리 양동 쪽방촌 주민들 사이의 연대가 다른 쪽방촌보다 느슨하다고는 하나, 어쨌든 그들 나름대로 현재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책을 보는 내내 쪽방촌 주민들의 이야기와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자주 겹쳐 읽히는 일이 잦았다. 두 집단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 대한 결정권과 ‘노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줄곧 배제되어 왔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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