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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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 연재] 공공시민노동과 노동의 혁신(3)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2-07-15 조회수 : 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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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시민노동과 노동의 혁신(3)


김도현|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 모순적인 노동의 현실을 혁신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인 동시에 ‘제도’가 다름 아닌 공공시민노동이다. 공공시민노동 개념의 뜻은 간단하다.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공공’ 영역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처럼 다룸으로써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했지만, 그것들은 단지 ‘허구 상품’(commodity fiction)일 뿐이며 결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상품일 수 없다고 말한다. 상품이란 그 정의상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며 인간은 자연을 생산할 수 없다.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 내지 신용 관계의 매개물이어서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므로 노동을 그 인간과 분리해 동원하거나 비축할 수 없다. 따라서 토지, 화폐와 더불어 노동은 판매를 위해 더 생산하거나 덜 생산할 수 있는 대상, 즉 상품이 아니다.1)

 그리고 1944년 개최되었던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는 통상 ‘필라델피아 선언’이라고 불리는 「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 선언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원칙도 바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칼 폴라니.


노동은 권리이자 의무


또한 노동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민권, 즉 ‘권리’로 존재해야 하며, 더구나 노동(근로)은 단지 ‘권리’인 것만이 아니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32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②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이처럼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민간(시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인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컨대 공교육이 존재하지 않고 사교육(교육시장)만이 존재한다면, 혹은 공교육+‘α’의 위상으로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α’의 위상으로 공교육이 존재한다면, 교육은 결코 권리도 될 수 없고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도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동이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 역시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거나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공공시민노동+‘α’의 위치에 노동시장이 자리매김하도록 함으로써,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공이 노동의 기회를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공시민노동이란?


이러한 공공시민노동 개념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는 공공시민노동 제도를 구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공공시민노동을 통해 제공되는 급여는 최저임금 이상의 생활임금(living wage) 수준에서 정해진다. 물론 이러한 임금 수준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한 정치경제공동체의 상황과 정치적 역량에 따라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공시민노동의 임금이 민간 영역의 임금과 고용 조건을 통제하고 견인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해진다는 점이다.

둘째, 공공시민노동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한다. 즉 흔히 ‘제3섹터’라고 불리는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단위들과 공공시민노동을 하려고 하는 개인들 자신으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여기서 공공시민노동으로 신청할 수 있는 활동은 한나 아렌트가 ‘활동적 삶’(vita activa)을 구성하는 세 가지 근본 활동으로 제시했던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를 포괄한다. 아렌트의 노동, 작업, 행위 개념을 우리는 각각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 문화 활동, 정치 활동에 대응시켜 볼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 세 가지 활동은 사실 이미 하나의 직업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공무원, 정당인, 교수·연구자도 노조를 구성하는 노동자이며, 예술 활동을 하면서 급여를 받는 문화노동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산업 노동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과 문화 활동 역시 충분히 노동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애인 당사자가 '이것도 노동이다 DISABILITY PRIDE'가 쓰인 깃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신청한 활동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꾸려지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심의하게 된다. 이 위원회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인·이주민·청소년 등의 소수자를 포함해서 지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위원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2/3 이상 참여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위원회와는 별도로 ‘공공시민노동청’도 중앙과 지방에 필요한데, 공공시민노동청은 기본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것과 함께 더 핵심적으로는 공공시민노동을 원하지만 스스로 적절한 활동을 찾거나 개발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시민노동으로의 인정에 대한 심의 기준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 · 정신적 · 정서적 삶에 기여’하는가 여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 매우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최중도 와상(臥像)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들의 생존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노동이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판단되며, 그의 생존(활동)은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정서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학업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 일정 수준의 급여를 단계별로 지급하게 된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학업은 이 사회가 유지, 발전하는 데 필수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치부되어 왔던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자신의 노동권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여성(또는 남성)의 가사 활동도 새롭게 그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으며, 현재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가 구축될 때에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2)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이야기했던,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 욕구”가 되는 사회,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3) 분배하는 사회의 단초를 지금 여기서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장애인 노동권 결의대회에서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가 공연하고 있다. 검은색 티셔츠에는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출처 : 비마이너)


¹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홍기빈 옮김, 길, 2009, 243~244쪽. 

² 공지영, 『의자놀이: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휴머니스트, 2012. 

³ 칼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4』, 최인호 외 옮김, 박종철출판사, 1997,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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